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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 끝내 사과 없었다..(남도일보)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6-09-14

조회수 : 23

5·18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자로 지목돼 온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끝내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신군부 핵심 인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정 전 사령관까지 숨지면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당사자 증언을 확보할 길도 사실상 막혔다.

 

14일 5·18 관련 단체 등에 따르면 정 전 사령관은 전날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94세로 숨졌다.

 

지역 5·18 단체들은 그의 죽음보다 끝내 듣지 못한 ‘사과’에 주목했다. 정 전 사령관은 생전 5·18 당시 자신에게 실질적인 지휘권이 없었다며 책임을 부인해 왔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옛 전남도청 진입 작전으로 유죄 판결까지 받은 책임자가 사죄하지 않고 떠났다는 점에서 유감"이라며 "수십 년 동안 진정성 있는 참회를 기다려 온 오월 영령과 유가족, 부상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남았다"고 했다.

 

양재혁 5·18 유족회 회장도 "살아있을 때 양심선언이나 고백을 했다면 진실을 밝히고 용서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며 "46년이 흐르는 동안 피해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전 사령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 육군특전사령관에 올랐다. 이듬해 5월에는 세 차례 광주를 찾았다. 당시 특전사 예하 3·7·11공수부대는 광주에서 시민 진압 작전을 벌였다.

법원 판단도 이미 나왔다. 정 전 사령관은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휘하고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997년 내란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5·18 책임을 둘러싼 조사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활동 종료를 앞둔 2024년 정 전 사령관을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다시 고발했다. 광주재진입작전 당시 병력 동원과 지휘에 관여한 정황에 더해 조사 과정에서 추가 희생자가 확인됐다는 이유였다.

 

정 전 사령관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2021년 조사위에 진정서를 내고 당시 자신은 작전 지휘계통에서 빠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전사령관이었지만 군수·행정 업무에 관여했을 뿐 공수부대 지휘나 발포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폈다.

 

조사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전 사령관이 공수부대 지휘체계와 무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0년 5월 20일 광주에서 3·7·11공수여단장 등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고 진압 상황을 보고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과거 재판에서 다뤄진 정황도 다시 확인됐다. 전교사 상황실에 특전사 전용 상황실이 운영됐고, 정 전 사령관이 5월 26일 밤 광주로 내려와 다음 날 새벽 진행될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나눠준 사실 등이 조사 결과에 담겼다.

 

그러나 정 전 사령관은 생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양 회장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당시 행적과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책임은 반드시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했다.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사과나 증언 없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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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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